유럽 수퍼리그 ‘삼일천하’

유럽 수퍼리그 ‘삼일천하’

40 도깨비 0 983 04.22 00:39

토트넘 등 EPL 6개 팀 참여 철회
정부·팬·UEFA 압력에 결국 항복
공정성 훼손과 미국 자본에 반발
UEFA-EPL구단 간 뒷거래 의혹



‘유러피언 수퍼리그. 2021년 4월 18일 출생, 2021년 4월 20일 사망’.

영국 토크스포츠는 이런 비문의 묘비 합성사진을 게재했다. 유럽 수퍼리그(ESL)가 18일 출범을 야심 차게 선언했지만, ‘삼일천하’로 끝날듯한 분위기를 조롱한 거다. 창립 멤버 중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6개 팀이 20일 참가를 철회했다.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토트넘, 첼시 등이다. 맨유는 “팬들, 영국 정부, 이해 관계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라고, 아스널은 “실수했다”라고, 토트넘은 “불안을 일으켜 유감”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유럽 빅클럽 12개 팀은 ‘그들만의’ 리그 창설을 발표했다. 참가만 해도 2000억원을 받는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46억 파운드(약 7조110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사흘 만에 ESL은 반쪽이 됐다. 스페인 세 팀(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과 이탈리아 세 팀(AC 밀란, 인테르 밀란, 유벤투스)만 남았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ESL 참가 시 월드컵 출전 불가”라는 강경 대응카드를 꺼냈다. 영국 정부도 비판에 가세했다. 무엇보다도 ‘축구 종가’ 잉글랜드 축구 팬들 반발이 거셌다. EPL 6개 팀이 먼저 백기를 든 배경이다. 첼시 팬 1000여 명은 홈구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맨유 팬은 ‘가난한 이가 만든 것(축구)을 부자가 훔쳐간다’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 100여 년 전 노동자가 앞장서 창단한 맨유는 현재 리버풀, 아스널과 함께 미국 억만장자 소유다. 팬들은 ESL 참여 6개 팀에 대해 “시즌 티켓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항했다. 서포터들은 구단 스폰서에게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축구의 중요한 가치인 ‘공정성’과 ‘연대 정신’을 외면한 데 대해 팬들은 분노했다. 유럽 축구는 하부리그 팀도 승격을 꿈을 꿀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반면, ESL은 메이저리그(MLB)나 미국 프로농구(NBA)처럼 프랜차이즈 방식의 폐쇄적인 리그다. 맨시티 미드필더 케빈 더 브라위너는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경쟁’이다. 차세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팬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자본이 침투해 영국 축구 문화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우려가 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ESL의 ‘물주’인 JP모건으로 불똥이 튀었다. 일부 영국인들이 JP모건 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보이콧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ESL 출범에 찬성한 맨유 에드 우드워드 부회장은 올해 말 사임한다.

알렉산드르 체페린 UEFA 회장은 “유럽 축구의 가족으로 돌아와 기쁘다”고 말했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환영했다. 올리버 다우든 영국 문화부 장관은 “축구는 팬들을 위한 것”이라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전 첼시)는 “축구팬들 잘했다. 이 아름다운 스포츠는 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반면, ESL은 “프로젝트 재편을 위해 가장 적절한 조치를 재검토하겠다”고 잠정중단을 시사하면서도 “잉글랜드 구단들이 압박에 못 이겨 (철회를) 결정했지만, 우리 제안이 법과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스페인 매체 문도 데포르티보는 “EPL 구단은 수퍼리그 불참의 대가로 UEFA로부터 거액의 재정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주장했다. EPL 6팀에 이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인테르 밀란, AC 밀란도 철회에 동참해, ESL도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처음부터 ESL 불참을 선언한 독일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소신도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